『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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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빌 2:5
Philippians 2:5 NKRV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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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라는 제목으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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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사도행전 16장에 언급이 되어 집니다.
여기서, 1) 루디아라는 여자와
2)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그리고
3) 간수의 이야기가 쭉 이어져서 언급이 됩니다.
-> 이들은 빌립보 교회에 발판이 되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인물(루디아,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간수)
민족적으로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이 세 사람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한 몸을 이루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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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교회가 형성되기 전에 상황을 보면, 성령께서 아시아로 가려던 바울을 막습니다.(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우리를 도우라’라고 바울에게 환상중에 나타난다.
- 바울은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바로 떠나게 된다.
이 환상으로 바울은 빌립보에 들어가게 된다.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은 ‘성령’이다.
-> 이제 모든 시대의 ‘교회’는 ‘성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가? 그런 말이 아니다.
성령의 올바른 인도하심을 듣고 순종하는 바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바울이 아시아로 갔어도 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이는 바울의 순종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역할’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상황을 정리하면, 성령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 세 인물을 만나는 현장에서도 또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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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디아를 만날 때,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문 밖 강가에 간다.
이 지역이 ‘기도의 장소’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대인들은 정규 회당을 구성하기 위해서 유대인 남성 10명이 필요했는데
아마도 10명이상의 유대인들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식적으로 회당이 없을 때는 깨끗한 물 근처의 장소에서 모이는 것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기도하기 전에 손을 씻는 의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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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기도하러 간 장소에서 옷감 장사하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난다.
여기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자색 옷감 장사하는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했다고 합니다.
Acts 16:13 NKRV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라고 기록합니다.
-> 여자들 모두가 아니라 한 여자 ‘루디아’라는 여자만 주께서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 바울이 말하고, 주께서 열어주신다.
바울은 맡겨진 것을 다하고, 결정은 성령이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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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신 들린 점치는 여종
이 루디아 사건이후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또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만난 ‘여종’, 점쟁이와 같은 것인데 파네서스 산의 아폴로 신전과 델피시의 탁선소를 지켜 주었던 고전 신화에 나오는 뱀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 아폴로가 뱀의 형태로 나타나서 그를 열광적으로 섬기는 여자 점쟁이들에게 투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다. 이 여인은 바울에 의해서 귀신으로부터 해방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투시했던 이 여인은 예수를 볼 수 있는 영적인 투시력이 생기게 된다.
-> 이 여자의 회복은 이름으로 회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 ‘성령의 역할’ 구체적인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비록 누가는 그녀가 회심을 했다거나 세례를 받았다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악한 영에게 해방된 사건이 루디아의 회심과 다음에 나오는 간수의 회심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빌립보 교회의 교인이 되었으리라고 추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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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간수를 만나다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서 주인이 바울을 고발합니다. 경제적인 타격이 와서죠. 그리고 바울은 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간수를 만나게 되어집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다가 옥문이 열리게 되어지죠. 그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도망한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죠. 자살을 시도하는 간수를 말리게 됩니다. 바울은 그 간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소망이 끊어진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뿐입니다.
-> 간수 처럼 ‘죽음’앞에 있는 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후 그 간수를 통해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온 집안이 구원을 받았다라고 또 언급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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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 인물을 통해서 언급되는 공통점이, ‘열리는 것’입니다.
1) 루디아의 마음이 열리고,
2) 다른 사람을 투시했던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의 눈이 열리고,
3)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다가 옥문이 열리고,
자살을 하려는 소망이 끊긴 간수의 마음이 열려서 온 가족과 집안을 열어줍니다.
-> 1세기 당시 온 집안이라는 것은, 현대사회에 가족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부터 여러 구성원들이 있는 하나의 교회가 되는 정도의 단위를 말합니다.
한 마다로, 간수의 집안은 ‘교회’가 되어 진겁니다.
-> 성령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한 사람이 교회라면, 우리를 세워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 이 세 인물의 내용을 통해 정리하면,
-> 이 열어주는 역할이 “성령의 역할”이었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추고
그 이름으로 신앙의 오해가 있던 루디아, 악한 영에 사로잡힌 여종, 죽음 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간수에 마음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할이 이 인물들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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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품으라는 말의 헬라어 원형이 (헬-프로네오) 단어이다.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 사고하고 분별하고,
쉽게 말하면, 마음의 태도를 가리키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 다른 말로,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세워라.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사고방식은 무엇인가?
이 세 인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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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사람의 이야기 1) 루디아(여자 사업가) 2) 귀신들린 점치는 여종 3) 간수 ‘빌립보’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이 3사람은 인종, 사회, 심리학적으로 서로 아주 동떨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3사람은 같은 복음에 의해 변화되었고 같은 교회에 맞아들여졌습니다. ‘빌립보 교회’입니다.
이 3사람은 민족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아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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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기원] - 서로 다른 민족
이 세 사람은
1) 루디아는 아시아사람으로 그녀는 빌립보 본토인이 아니라 이민 온 사람이다.
2) 귀신들린 여종은 아마도 헬라인으로 그곳 거류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외국인이었을 수도 있다. 보통 종들은 도처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암시하는 말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3) 간수는 은퇴한 군인이었거나 재향 군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빌립보에서는 제대한 군인들을 정착시켰기 때문입니다. 로마 식민지의 합법적 행정 기관 안에 있었던 모든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로마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3사람은 로마 제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연합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제각기 다른 그들은 휠씬 더 심오한 연합 즉 하나 됨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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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위]
1) 루디아 부유한 여인(옷감장사)
2)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그녀는 아무것도 소유한 여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 자신마저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3) 간수(이 두 여자들의 중간쯤에 있었다) 감옥에 책임 있는 지위에 있지만
국가에 종속된 공무원이었다.
서로 다른 민족과 다른 지위가 다른 세 사람은 빌립보 교회의 창설 멤버로서 아무런 차별없이 대등하게 그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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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가정의 가장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이나 여자나 종으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꼭 같은 기도를 드리곤 했다.
-> 여러분 한국 교회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 가정의 가장들이 많은지 아십니까?
심지어 교회를 유대인 가정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하나인 공동체임을 선포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썼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선입견과 차별이 무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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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으로 사회적 지위로 전혀 다른 이 3사람을 연합시키게 했던 원동력은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이 그들 안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다 다 다
그러므로, 함께
->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분별하고 숙고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신중한 마음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선입견과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통제 하는 것이고
또한 ‘성령의 역할’을 통제하는 거와 마찬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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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이 빌립보서를 바울이 약 10년 후에 ‘빌립보서’를 기록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이 기간 동안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잃어갔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권면하면서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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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학자들은 오늘 본문에 2장 5-11절이 ‘중심 구절’이라고 말합니다.
일명 “케노시스 찬가”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케노시스라는 말은 성육신으로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를 교리적으로 설명하는 헬라어입니다.
“케노시스”의 뜻은, “비움의 행위”라는 말이다.
-> 한 마디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들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비우라는 말입니다.
너희 안에 있는 ‘사고방식’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 방식을 채우고 세우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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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존경하는 지도 교수님이 경험하신 이야기를 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모태 신앙이라서 강대상이나 교회 물건이나 함부로 하다가 항상 혼쭐났다고 합니다.
예배 시간에 복장도 항상 점잖게 입고 조금만 틀어지는 복장을 입으면 호 되게 혼나면서,
“너 대통령 만날 때도 이렇게 가?”, “어디 왕 만나는데 이러고 오니?” 이런 말들을 듣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에 길 들어 져서 영국에 유학 가서 박사공부를 하시는데,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영국의 지도 교수님이랑 박사공부하는 동료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예배드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참다 참다 정중히 교수님께 말씀드렸다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러 오시는데 반바지 차림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왜? 아빠 만나러 오는데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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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이 아닌 길들여진 전통과 내 세워놓은 사고방식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올바른 사고방식인 것처럼 착각해서 세워놓은 단단한 잘못된 사고방식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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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오는 루디아,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간수는 전혀 다른 민족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전혀 다른 문화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 선입견, 차별, 그들의 전통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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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2024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
2024년 올 한해에 우리 안에 무엇이 세워져 있었을까?
너무 많은 선입견, 차별, 그리고 멸시, 비판, 오해, 시기, 질투, 미움, 분냄, 모함, 합리성,
분쟁, 분열, 열등감, 판단, 지적, 계급, 감정, 전통 등등 이런 것들로 가득 채워지지 않았는지?
-> 그게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인 것처럼,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 여러분 바울이 아시아로 가는 것은 ‘전도’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아시아가 아니라 ‘빌립보’로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울과 성령은 둘 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무엇을 따라 살아갔습니까?
내 안에 ‘선한 의도’입니까? 성령의 의도입니까?
-> 저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이런 선택의 기로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바울은 자신이 가진 ‘선한 사고방식’ 그리고 ‘성령의 사고방식’ 두 갈래 의 길??
바울의 길이 나쁜 길입니까? 아니죠. 성령의 인도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 여러분들은 2024년 동안 어느 길로 걸어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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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으로 가득 채우고 세워져서 교회 안에 한 몸을 이루고 한 분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며 성령의 역할이 풍성해지는 성령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 대광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읽고 마치겠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시는 길이니
찬양하겠습니다.(찬송가 370장 찬송하겠습니다)